금누리 금속공예.셈

금속.공예.셈

2003/06/12(21:41) from 220.117.128.170
작성자 : 조경화 (KHCHO@candydental.com)	조회수 : 919 , 줄수 : 14

쇠붙이와 가죽을 섞어쓰기

  쇠붙이와 가죽은 어찌 보면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는, 또 어찌 보면 무척이나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두 재료이다. 두 가지 다 지금 당장 주위에서 집어 들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생활에 깊숙이 파고 들어와 있다. 그 존재가 거의 인식되어지지 않을 정도로 흔하기도 하며, 반면에 그 존재가 하나만 있어도 눈을 파고 들 정도로 강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각각의 재료이기도 하다. 이미 이렇듯이 자주 섞여서 쓰이는 재료이지만 또한 상당히 제한된 이미지로만 섞여서 쓰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 이 매력 있는 두 재료를 기존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어서 섞어 써 보도록 하자.

  옷장 안을 열어보자. 누구나 가죽으로 된 옷 한두 개 쯤은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없다고? 그럼 하다못해 가죽 장갑 한 켤레나 아니면 적어도 가죽 허리띠라도 있을 터이다. 가죽 가방은 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물건이고 신발장을 열어보면 우리 주위에 가죽이 이렇게 많이 쓰이든가 싶을 정도로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쇠붙이는 더하다. 지금 앉아 있는 주변을 둘러보자. 내 주위 반지름 일 미터에 있는 물건들 중에서 쇠붙이가 쓰인 부분을 다 다른 재료로 바꾸어 반지름 일 미터의 쇠붙이 없는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자. 바꾸어 넣을 재료가 다 떠오르는가?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자, 그러면 이번에는 위에서 말한 동그라미 안에 가죽과 쇠붙이를 섞어서 쓴 물건이 있는지 찾아보자. 역시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열쇠고리, 쇠붙이 장식이 달린 지갑 정도나 있을까.. 옷장이나 신발장을 열어보면 가죽과 쇠붙이를 섞어 쓴 물건을 좀 볼 수 있다. 허리띠나 가방, 신발에 쇠붙이 장식이 붙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쇠붙이는 가죽으로 된 물건의 일부를 장식하는 역할을 많이 한다. 아니면 기능적으로 단단한 고리가 필요한 부분 등에 쓰이게 된다. 허리띠에는 죔쇠가 쇠붙이로 만들어져 있고 가방은 잠금쇠가 쇠붙이로 만들어져 있다. 신발은 조그마한 쇠붙이가 장식으로 붙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경우 가죽으로 된 물건에 붙어있는 쇠붙이는 그것이 박혀 있을 이유가 있는 곳에 부분적으로 붙어서 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럼 대부분이 쇠붙이이고 가죽이 일부 섞여서 쓰인 물건은 없을까..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이다. 대부분이 쇠붙이로 만들어진 기계인 자동차에서 가죽은 의자와 스티어링 휠, 문의 안쪽 마감재 등의 역할로 쓰인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 부분이 꼭 가죽일 필요는 없다. 이전에는 나무나 천 등도 사용되었었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합성수지도 사용될 수 있다. 단지 가죽은 고급스러움을 더 해주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다. 자동차에 고급스러움을 더 해주기 위해서 가죽이 사용된다면 이것은 가죽 특유의 어떤 이미지를 가져다 쓰는 것이다.
  여기서 가죽 특유의 이미지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생각을 되 짚어보자. 처음으로 가죽이 쓰인 것은 보온을 위해서이다. 사냥을 해서 짐승을 잡아 고기는 먹고 가죽은 다듬어서 잘 말려두었다가 날씨가 추워지면 뒤집어쓰고 다닌다. 헌데 어떤 놈은 사슴 가죽을 뒤집어쓰고 다니는데 어떤 놈은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쓰고 다닌다. 사슴 밖에 잡을 수 없는 놈은 사슴 가죽 밖에 못 뒤집어쓰고 다니지만 호랑이를 때려잡을 수 있는 놈, 아니면 적어도 다른 놈이 때려잡은 호랑이의 가죽을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놈만이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쓰고 다닐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어떤 가죽을 가지고 있느냐는 자신의 힘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며 자신의 지위를 표시하는 징표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서 가죽을 다듬는 기술이 발달을 한다. 여전히 한편에서는 털가죽이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든지 과시하는 용도로 사용이 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털이 제거되고 잘 다듬어진 가죽들이 살갗의 바로 윗면을 감싸며 성적인 메시지를 토해내기 시작한다. 사회 통념상 내 살갗을 다 드러내어 놓고 보여줄 수는 없지만 내 몸에 두른 가죽을 보면서 ‘그 밑에 있는 내 살갗을 그려보아라..’ 이런 이야기이다.
  쇠붙이 또한 그 시작은 힘의 상징이었다. 청동기보다 훨씬 높은 온도에서만 제련이 가능했던 철은 그러한 기술을 갖고 있던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고, 그 단단함은 싸움에서 막강한 힘의 우위를 보이게 된다. 결국 철을 제련할 줄 아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계급은 나누어지게 된다. 내가 힘이 있다는 것을 보이려 할 때는 꼭 철로 된 칼이나 창을 들고 있을 필요는 없다. 철로 만든 지팡이 철로 만든 장식품 하나만 들고 있어도 그 지위는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한편으로는 신분과 힘의 징표와 장식품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적으로 기술적인 활용을 위하여 쇠붙이는 그 다루는 법이 점점 발전하게 된다.
  지금에 와서는 가죽의 원초적인 느낌에다 쇠붙이의 차갑고 날카로운, 혹은 뜨겁고 둔탁한 느낌을 강조해서 섞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전적으로 표면처리가 어떻게 되었는가에 달려있다. 쇠붙이는 그 표면처리에 따라서 금방 냉장고에서 꺼낸 느낌도, 금방 용광로에서 꺼내어 식힌 느낌도 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느낌을 상당히 과장시켜서 가죽과 쇠붙이를 섞어서 쓴 경우를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할레이 데이비슨 샾으로 가보자. 쇠붙이로 만든 오토바이를 가죽가방, 가죽손잡이 등으로 장식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더욱 조그마한 쇠붙이 장식들로 가죽을 꾸며 놓은 것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쓰임새와는 상관없는 쇠붙이 장식들이 붙어 있는 옷가지들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시 가죽의 원초적인, 또한 어느 정도는 마초(marcho)적인 이미지에다 쇠붙이의 극도로 날카롭든지 극도로 둔탁한 이미지를 더하여 강조한 것들이다. (여기서는 주로 쇠붙이의 둔탁하고 뜨거운 이미지를 많이 가져다 쓴다.) 다른 예로는 일반적이지 않은 성적 이미지를 묘사할 때 가죽과 쇠붙이가 섞여 쓰인 소품들을 많이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역시 그 쓰임새와는 상관없는 쇠붙이 장식들을 옷가지나 소품에 과장되게 섞어서 쓰는 것이다. 요즈음에 와서는 흔히 싸이버 이미지라고 불리는 SF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가죽과 쇠붙이를 섞어 쓰는 경우들이 많다. 이것은 그 시작을 60년대 무렵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SF 영화에 두고 있는데, 영화 혹은 TV 시리즈에서 미래적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 가죽의 광택과 표면 질감, 그 차가운 느낌을 가져다 쓰며 거기에 덧붙여 과장을 하기 위해서 잘 다듬어진 쇠붙이를 전혀 쓰임새와는 상관이 없는 부분, 혹은 마치 그 쓰임새와 상관이 있을 것 같아 보이는 부분에 붙여서 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주로 쇠붙이의 날카롭고 차가운 이미지를 극도로 과장시켜서 쓴다.)

  여기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가죽과 쇠붙이의 섞어 쓰임은 그 쓰임새의 필요 때문에 같이 쓰이는 경우와 어떤 이미지를 극도로 과장하기 위해서 섞어 쓰는 경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예들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가죽이나 쇠붙이에 대한 그 느낌의 선입견에 따라 쓰임의 경우를 한정지어 버리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만약에 가죽과 쇠붙이를 꼭 그 필요성 때문도 아니고 단순한 과장을 위한 것도 아닌 곳에 섞어 쓸 수는 없을까.. 우리의 생각이 한계를 넘어서 써 보는 것은 어떨까.. 또한 이미 굳어져 버린 가죽과 쇠붙이의 이미지를 뛰어 넘어서 가죽과 같은 느낌의 쇠붙이, 쇠붙이와 같은 느낌의 가죽으로 섞어 써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