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상태를 처음 진단했던 예나대학병원의 교수 오토 빈스방어가 내놓은 이 주장은 그러나, 니체의 병력을 분석한 프랑스 정신의학자 자크 로제의 저서 니체 신드롬(이혜은 옮김, 이끌리오 펴냄)에 따르면 사실이 아니다.
니체에 관한 억측 가운데 또다른 하나는 그가 정신적 고통을 스스로 찾아다닌 사람이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한때 니체의 연인이었던 루 살로메가
제일 먼저 제기한 것이다. 살로메는 “고통의 추구는 니체의 성장 과정 내내 그의
재능의 진정한 원천이었다”고 니체 전기에 썼다. 그러나 이 또한 니체 신드롬에
따르면 사실이 아니다.
니체 신드롬은 환자의 병력 기록부와 주변 사람들의 증언,
니체가 이들과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 그리고 자전적 성격이 강한 그의 저술들을
면밀히 분석해 `환자' 니체의 정신을 진단하고 병력이 그의 삶에 끼친 영향을 두루
살핀 특이한 전기다. 지은이의 분석에 의하면, 니체의 정신을 앗아간 광기의 실체는
매독균이 침투해 생긴 전신마비가 아니라 조울증의 악화가 가져온 정신퇴행이었다.
또 니체는 고통을 추구했다기보다는 정신질환이 야기한 고통 때문에 끊임없이 절규한
사람이었다.
니체는 청소년기부터 삶 전반에 걸쳐 두 가지 중요한 질병을 앓았다.
그것은 악성 편두통을 동반한 조울증이었다. 지은이는 편두통과 조울증이 함께 나타나는
이 특징적인 증상을 `니체 신드롬(증후군)'이라고 칭한다. 18살 때 처음 나타난 니체의
조울증은 1879년과 1888년을 변곡점으로 해 세 단계로 악화됐다. 1879년까지는 우울증이
강했던 데 비해 그 이후엔 정신이 지나치게 흥분하는 경조증이 우세했으며, 1888년에
조증이 강화된 조광증 상태에 이르렀다. 그의 인생은 정신병 발작 직전까지 “비상과
추락의 연속, 흥분과 의기소침의 반복교대”였다.
`니체 신드롬'은 그가 우울증 상태에 빠져 있을 때 극심한 고통으로
그를 괴롭혔다. 이 상태에 빠지면 그의 정신과 육체기능은 극단적으로 낮아져 읽지도
쓰지도 못했으며, 옷을 입고 세수하는 것조차 힘들어했고 피로감과 불면증으로 녹초가
됐다. “니체는 무기력하고 쇠약하고 탈진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 그런 순간들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경조증 상태가 되면 상황은 역전됐다. 경조증이 야기한
흥분은 그에게 충만감과 해방감을 가져왔다. 창의적 영감이 최고조에 이르러, 고삐
풀린 망아지가 드넓은 풀밭을 내달리듯 그는 “쓰고 또 쓰고 서둘러 썼다.” 이것은
경조증이 많아지는 1880년을 기점으로 해 그의 저술작업이 급속하게 활발해진 것으로도
입증된다. 1883년에 탈고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는 단 열흘
만에 써낸 것이었다.
이 경조증 상태에서 니체가 동일시 대상으로서 발견한 것이 그리스
신화의 주신 디오니소스였다. “능력에 대한 자신감, 자기 자신에게서 해방되고 싶은
욕구, 극도의 외향성, 폭발적 상태”라고 니체가 기술한 경조증 상태는 디오니소스적
황홀감 혹은 도취감과 일치한다. 이 디오니소스적 상태에는 가벼운 정신착란적 징후가
깔려 있었다. 다만 발병 전까지 니체가 비판적 의식을 견지함으로써 그의 글이 논리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한겨레신문 고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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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999999">편집시각 2000년05월21일22시06분 K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