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널리.알림


2001/05/22(17:31) from 210.123.35.44
작성자 : 금누리 조회수 : 27824 , 줄수 : 147
코.수염.붙인.이.누군가
김수근과 마르셀 뒤샹

나에게 인물 조각상을 부탁하는 일들이 여럿 있었으나 받아들이지 않거나 다른 조각가를 추천하였다.
그러나 나는 김수근 님 인물상은 마음을 다 써 만들었다.

돌아가신 김수근 님 10주기에 그를 기리고자 그가 머물렀던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교수들과
건축과에서 배운 이들이 뜻을 모아 학교에 그의 흉상을 세우기로 하였고, 그 일을 나에게 맡겼다.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해내기는 힘드나,  그의 모습은 힘겹더라도 내가 만들어내어야만 한다는 느낌이 크게 들었다.
그 때 나는 팔을 쓰기 힘들만큼 몸이 좋지 않았고, 주어진 마감까지 때도 길지 않아 쉽지는 않았으나
나는 무엇 보다 그 일을 먼저 생각하였고, 온 마음을 쓰기로 하였다.



홀로된  김도자 님과 그 때 공간사 대표 장세양 님을 만난 며칠 뒤 곧바로 만들어 나가기로 하고
나는 내 일을 도울 이에게 공간에 있는 사진과 영상자료를 빌려오라고 하였다.
그가 김수근 님을 만난 적 없는 젊은이 이었기에 자료만이 아니라 김수근 님의 냄새가  담겨있는 공간을
깊이 잘 둘러보고 그 집 안 아담한 공간에 앉아서 차도 한 모금 마시고 오도록 해보라고 하였다.
심부름 보내며 나는 날 도울 이의 옷차림이 그 집 공간에 맞을지도 내 눈으로 살폈고,
다시 베껴 옮긴 사진을 담아오는 것이라 하더라도 나의 그림 가방을 내어 주었다.
그 날 안개비가 내리기에 뽕삐두현대미술관 책가게 유리장 안에 있던 나의 까만 우산을 내어 주었고,
내 수레 열쇠도 내어주며 타고 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는 내 뜻을 알아채지 못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사진 만을 얻어왔다.
그러니 그 일 바탕이 될 만한 것들을 넘겨주는 공간과 김수근문화재단 쪽도 나의 말없이 바라며 맡긴 일을 들어줄 수 없었으리라.
그에게 얼마나 공간에 머물었는지를 물으니 30깍 안팎이라 한다.
그는 마침내 김수근 님이 쓰고 있던 안경을 베껴내는 일만을 하였다.

나는 또 다른 배우미를 불러 김수근 님 흉상 바탕 일을 시켰다.
이 젊은이는 공간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는 드문 조각가이었다.
나는 이 도우미에게 일을 끝내기까지는 내가 주는 김수근 님 이미지나 내가 던지는 말만 듣도록 하고,
그 스스로 김수근 님의 건축이나 그와 조금이라도 이어져 있는 것들을 찾아보지 말라고 일렀다.
김수근님 인물상 만들기를 그렇게 해나간 나의 뜻은 옳았고, 나의 팔도 나아갔다.

내 방에는 돌아가신 김수근 님 10주기에 그를 기리고자 세운 흉상 본이 둥근 걸상 물레 위에 놓여 있다.
방을 들어서면 항상 그를 마주치게 되는데 스승이 나를 끊임없이 지켜보고 있는 듯 느껴 나 스스로 몸짓을 가다듬기도 하고,  
김수근 님이 나의 삶에 큰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래도 가까이 있는 그의 눈빛이 큰 짐으로 여겨질 때도 있기에 나는 가끔 김수근 님의 눈을 창밖으로 돌려놓기도 하는데,
물레 위 김수근 님은 나도 모르게 스스로 돌아서 바로 놓여 나를 다시 지켜본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내방을 들어서는데, 김수근 님의 코밑에 까만 코털이 붙어있다.
내 입에 웃음 꽃 피니, 그 날은 돌아가신 분께도 웃으며 아침 절을 나눈 셈이다.
아마도 김수근 님을 닮고자 하는 배우미들의 멋진 놀이임에 틀림없다.
그 때 나는 그것이 누구의 짓인지 다그치지 않고 한동안 그렇게 둔 채로 나 홀로 털을 이리 저리 옮겨 붙이기도 하였다.


스승 + 스승 + 스승 + 송편 + 배우미 + 배우미 + 배우미

생각해 보면 젊은 배우미의 배우미들은 스승스승스승스승스승스승들을 세종이나 이율곡
또는 레오날도 다 빈치나 마르셀 뒤샹의 높이 위에 놓고자 한 셈이다.

나는 어릴 때 눈물이 많았으나 요즈음은 여는 어른들처럼 눈물이 메말라 있다.
어느 날, 홀로 울고 싶었을 때,  나는 까만 코털을 떼어내 그 눈 끝에 붙이니 김수근님이 까만 눈물을 쏟으며 우는 것이 아닌가.

그 눈물 뜯어내니 그도 나도 더 이상 울지 않는다

7L2luchamp...
-T
D


///// 아래는 우리말로 다시 손보고 있는 글

김수근과 마르셀 뒤샹

금누리

나에게 사람을 빚어 만들어 달라는 일들이 여럿 있었으나
받아들이지 않거나 다른 멋질비(조각가)를 알려주곤 하였다.
그러나 나는 김수근 님 얼굴은 마음을 다 써 만들었다.

김수근 님이 돌아가신 지 10해가 되자 그를 기리고자
그가 머물렀던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들과 집짓기(건축)를 배운 이들이 뜻을 모아
배움터(국민대)에 그의 얼굴을 만들어 세우기로 하였고,
그 일을 나에게 맡겼다.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해내기는 힘드나,
그의 느낌은 힘겹더라도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그때 나는 팔을 쓰기 힘들만큼 몸이 좋지 않았고,
주어진 마감까지 때도 길지 않아 쉽지는 않았으나 나는 무엇보다 먼저 그 일을 생각하였다.



홀로된 김도자 님과 공간사 우두머리였던 장세양 님을 만난 며칠 뒤
곧바로 만들어 나가기로 하고 나는 내 일을 도울 이에게
공간에 있는 빛그림들(영상자료)과 쓸 만한 것들을 빌려오라고 하였다.
그는 김수근 님을 만난 적 없는 젊은이였기에 나는 쓸감만이 아니라
김수근 님의 냄새가 담겨 있는 공간까지 깊이 잘 둘러보고
그 집 안 아담한 공간에 앉아서 차도 한 모금 마시고 오도록 해보라고 하였다.

심부름 보내며 나는 도울 이의 옷차림이 그 집 공간에 맞을지도 내 눈으로 살폈고,
비록 쓸감을 베껴 담아오는 일이었지만 내가 스스로 고쳐 만든 그림 가방까지 내어 주었다.
안개비가 내리기에 뽕삐두현대미술관 책 가게 유리틀 안에 있다가
마침내 나의 것이 된 까만 우산을 내어 주었고,
내 수레 열쇠도 내어주며 다녀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는 내 뜻을 알아채지 못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찍은 그림(사진)만을 얻어왔다.
그러니 일의 바탕이 될 만한 것들을 넘겨주는 공간과 김수근문화재단 쪽도
내가 말없이 바라던 일을 들어줄 수 없었으리라.
그에게 얼마나 공간에 머물었는지를 물으니 30깍(초) 안팎이라 한다.
그는 오로지 김수근 님이 쓰고 있던 유리알 테를 베껴내는 일만을 하였다.

나는 또 다른 배우미를 불러 김수근 님 얼굴을 만드는 바탕 일을 시켰다.
이 젊은이는 공간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는 드문 멋질비 였다.
나는 이 도우미에게 일이 끝날 때까지는 내가 주는 김수근 님 그림이나
내가 던지는 말만 듣도록 하고,
그 스스로 김수근 님이 만든 집이나 그와 조금이라도 이어져 있는 것들을
찾아보지 말라고 일렀다.
김수근님 얼굴 만들기를 그렇게 해나간 나의 뜻은 옳았고,
나의 팔도 나아갔다.

내 일터에는 돌아가신 김수근 님 10 해가 지난 뒤 그를 기리고자 세운
얼굴의 본이 둥근 걸상 물레 위에 놓여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항상 그를 마주치게 되는데
스승이 나를 끊임없이 지켜보고 있는 듯 느껴져
나 스스로 몸짓을 가다듬기도 하고,
김수근 님이 나의 삶에 큰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래도 가까이 있는 그의 눈빛이 큰 짐으로 여겨질 때도 있기에
나는 가끔 김수근 님의 눈을 밖으로 돌려놓기도 하는데,
물레 위 김수근 님은 나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 돌아서 바로 놓이고
다시 나를 지켜본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내 일터로 들어서는데,
김수근 님의 코밑에 까만 코털이 붙어 있었다.
내 입에 웃음꽃 피니,
그날은 돌아가신 분과 웃으며 아침 절을 나눈 셈이다.
아마도 김수근 님을 닮고자 하는 배우미들의 멋진 놀이임에 틀림없다.
그때 나는 그것이 누구의 짓인지 다그치지 않고 그렇게 둔 채로
나 홀로 털을 이리저리 옮겨 붙이기도 하였다.

스승 + 스승 + 스승 + 송편 + 배우미 + 배우미 + 배우미

생각해 보면 젊은 배우미의 배우미들은
스승스승스승스승스승스승들을 세종이나 이율곡 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마르셀 뒤샹의 높이 위에 놓고자 한 셈이다.

나는 어릴 때 눈물이 많았으나
요즘은 여는 어른들처럼 눈물이 메말라 있다.
어느 날, 홀로 울고 싶었을 때,
까만 코털을 떼어내 그 눈 끝에 붙이니
김수근 님이 까만 눈물을 쏟으며 우는 것이 아닌가.

그 눈물 뜯어내니 그도 나도 또 다시 울지 않는다.

7L2luchamp...
-T
D

Modify Delete Post Reply Backward Forward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