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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5(07:59) from Anonymous Host
작성자 : 말^.퀸 > + 김정락	조회수 : 1258 , 줄수 : 59

말^.퀸.의 스스얼굴

<마크 퀸의 Self>
"Ogni pintore dipinge se stesso(모든 화가는 자기 자신을 그린다)."
모든 예술은 생산자(작가) 자신의 분신이다.
그런 기본적인 사유에서 출발하여,
미술가가 그려내는 것은 결국 자기로 환원되는 형상이라는 것이
예술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그 종점에는 자화상(혹은 자각상)이 있다.
그러니까 자기표현이란 개념을 더욱 구체화하고 목적화한 것이 바로
이런 장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화상은 미술역사상 뒤늦게 등장한 장르이기도 하다.
그것도 우연히 최초의 자서전이라 평가되는 몽테뉴의 ‘명상록’이
출간된 즈음에 화가들의 (독립된) 자화상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르네상스는 자화상의 붐이 불었고,
거의 모든 화가들이 자신을 그림으로 남겼다.
“모든 화가는 자신을 그린다.”라는 선언은 이 시대에 나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현대미술에서도 자화상은 화가들에게 있어 거의 불가결한 화제가 되었다.
고흐나 피카소가 그랬듯이,
수많은 화가나 조각가들이 열심히 자기를 그리고 팠다.
나아가 다른 장르를 통해서도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성실하였다.
또한 자기의 재현을 통해서 기술적 그리고 관념적으로 예술의 신기원을
이룩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여기서는 그런 사례들 중에서 좀 끔찍한 것을 소개하겠다.
현대 영국의 예술가 - yBa의 선배 격이면서도 매우 감각적이고
충격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 마크 퀸(Marc Quinn)이 주인공이다.

퀸의 이 자각상은 작가의 얼굴이라는 점에서는 통념 위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 재료와 보존이라는 맥락에서는 예술의 개념
그 자체를 붕괴시켜 버린다.
흙이나 돌 혹은 청동이 아니라,
놀랍게도 형상을 이루는 재료는 작가 자신의 혈액이다.
자신의 머리 크기만큼의 분량의 혈액을 얻기 위해 작가는 수 년 간에 걸쳐
피를 뽑았다.
나아가 혈액에서 응고인자를 좀 더 분리하여 형상을 위한 재료로
가공하기도 하였다.
완성된 이후 형상은 상온에서 보존이 불가능하여,
거의 냉동상태가 유지되는 유리관 속에 넣어 유지되고 있다.
이즈음에 연상되는 것은 과거 악마와 영혼을 거래하는 계약서에
자기의 피로 서명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만큼 이 경악할만한 재료의 선택은 모든 것을 걸고
예술에 임했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형상뿐만 아니라,
물리적 질료도 자기의 것이라는 파괴적이며 동시에
창조적인 예술개념은 과연 현대미술의 상상력은 어떤 금기의 경계를
설정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와 기대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아름답다거나 감동적이라거나 혹은 관조적이어야 할 예술작품은
이런 상식적 기대를 저버리고,
다른 감각과 지각의 차원을 개척하려 하는 것 같다.
더하여,
이런 작품들을 흔쾌히 수용하고 사들이는 자본주의의
포용성(혹은 포식성)도 적지 않게 놀랍다.

Marc Quinn, Self,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