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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7(11:44) from Anonymous Host
작성자 : 구연상	조회수 : 2237 , 줄수 : 100

"떠살이"

이대로, 김대철 선생님께서 플랑크톤(plankton)의 우리말 옮김말로
"떠살이"를 지지하신다는 말씀에 저도 크게 공감합니다^^

플랑크톤이라는 갈말은
독일의 생리학자 빅토르 헨센(Viktor Hensen: 1835-1924)이 처음 만든 것입니다.
이 낱말은 고대 그리스낱말 '플랑크토스(planktos)'의 뜻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뜻은 '떠돌아다님(원더링 wandering)'과 '떠다님(드리프팅 drifting)'입니다.

일본 학자들은 플랑크톤을 "부유생물(浮遊生物)"이라 번역했고,
요즘은 소리적기로 "プランクトン"이라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부유생물'로 많이 썼는데 최근으로 올수록 '플랑크톤'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북한의 문화어는 이 낱말의 옮김말로 "떠살이"를 쓰고 있는데,
이는 '하루살이'라는 낱말과 그물지어 그 뜻이 쉽게 이해되는 듯합니다.

그런데 ''부유생물"이라는 갈말은 "부(浮)"가 '물 속에 떠다니는 어떤 것'을
나타내고, "유(遊)"가 '물결 따라 흘러다님'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물 속'의 생명현상을 잘 밝혀 주고 있는 반면,
우리말 "떠살이"는, '뜨다'라는 낱말의 뜻이 너무 많을 뿐 아니라
'살이'라는 낱말도 '-톤(-ton)'의 뜻을 제대로 옮겨놓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저는 '부유생물'보다는 '떠살이'가 플랑크톤의 본디 뜻을
더 알기 쉽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떠살이"는 좀 더 갈고 닦아 나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플랑크톤"이라는 갈말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주목해야 합니다.
플랑크톤은 현재분사 형용사 '플랑크토스'를 명사화시켜 만들어진 것입니다.

과학의 영역에서 이러한 방식의 말만들기는 이제는 매우 일반화된 것입니다
우리가 '중성자(中性子)'라 부르는 갈말은 본디 '뉴트론(neutron)'인데,
이 갈말은 '중립적'이라는 뜻의 형용사 '뉴트럴(neutral)에 '있는 것'을
뜻하는 '온(-on)'을 꼬리붙임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온'을 일본번역어를 따라 '-자(子)'로 쓰는 것은 궁여지책에 가깝습니다.
'자'가 '있는 것'을 대신할 수도 없거니와 '소립자'나 '미립자'는
'온'이라는 낱말과 관련된 게 아니기에 뜻에 혼란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플랑크톤을 "부유자(浮遊子)"로 옮길 수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떠살이"도, 그 갈말이 만들어지는 방식과 뜻매김의 엄밀한 측면에서
보자면, 분명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플랑크톤"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주목해 보았을 때,
우리는 그것이 동사 "플라제스싸이(plazesthai)"[=떠돌아다니다,
길을 잃고 헤매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중시해야 합니다.

이때 플랑크톤은 '떠돌아다니다+있는 것'의 뜻으로 매김된 것입니다.

만일 "떠돌아다니다"가 "떠다니다"로 줄여질 수 있고,
"살이"가 '살아 있는 것'으로 바꿔 쓰일 수 있다면, "떠살이"는
'떠다니는 것'과 같은 것이 됩니다.

하지만 "떠다니는 것"은 하나의 '이름'[=명사]가 아닙니다.

우리말에는 다양한 명화화 어미들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많이 줄어들어
'-ㅁ'이나 '-기' 등 정도만 주로 쓰이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말의 명사화 방식을 좀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말의 법을 바꾸라는 요구이기 때문에 매우 큰 부작용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말은, 그것으로써 우리가 서로의 뜻을 함께 나누기 위한 것인 한,
끊임없이 고쳐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떠다님+것'의 명사화 방식 가운데 하나로 '-ㅂ'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보기컨대, "지음"은 '짓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으로서 사람이
무엇인가를 짓는 '행위'만을 따로 떼어내 갈무리해 놓은 낱말이고,
"집"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짓는 행위로써 이뤄낸 그 결과물을 개념화하는
낱말입니다.

이러한 말만들기 방식에 따를 때, '플랑크톤'은 '떠다닙'이 됩니다.

이러한 말놀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도록 하기에
그 결론에 큰 반감을 불러일으킵니다.(ㅠㅠ)
제가 화자(話者)라는 한자 우리말을 '말하미' 또는 '이야기하미'로 바꿔
논문을 쓴 적이 있었는데, 심사자께서 '우리말 파괴범'으로 단죄하시어
제 논문을 탈락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하다'라는 동사와 '말하는 사람'이 이어져 쓰일 수 있어야 한다면,
'말하는 사람'이 갑자기 '화자'로 뒤바뀌는 상황은 '말의 끊어짐'을 넘어
'생각의 끊김'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달리다'에서 '주자'로 바꿔 말해야 하는 상황이 거듭 닥친다면,
말의 사슬이 끊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실제로는 생각도 토막토막 잘려나가는 것입니다.

'떠다니다'라는 동사는 '뜨다+닫+니+다'가 한데 다물린 낱말입니다.
"뜨다"의 뜻이 13가지나 된다는 점은 걸림돌이 되지만,
그 뜻들은 얼마든지 사실에 맞춰 좁힐 수 있고,
'닫'[달림], '니'[=감], '다'[모두잡음] 등의 뜻이 함께 짜맞춰 만들어진
"떠다니다"는 우리가 몸으로 경험하고 있는 '현실'을 너무도 정확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갈고 닦기 위해서 우리는 '-ㅂ'의 꼴을 명사화 어미로
배워 익히는 일을 스스로 함께 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이란 공동체의 사랑을 통해서만 그 생명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슬기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