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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널리.알림

2022/12/19(18:04) from Anonymous Host
작성자 : 구연상	조회수 : 2335 , 줄수 : 194

틀린 거짓말에 대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있는 것에 대해서는 ‘있다’라고 말하고,
없는 것에 대해서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참이고,
그와 다르게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를 때, ‘참’은‘말과 그 말이 말하는 바의 같음’ 또는
‘말의 사실에의 맞음’을 말한다. 그것의 반대가 되는 ‘거짓’은
자연스레 그 둘의 다름 또는 맞지 않음을 일컫게 된다.

참거짓의 문제를 사실과의 맞고 틀림에서 바라보는 철학은 상식적일 뿐 아니라
매우 올발라 보인다.

그런데 무엇이 사실과 맞거나 틀릴 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
참거짓’의 문제를 약속이 이루어지는 공동체적 삶의 영역으로부터
‘말함의 영역’으로 좁혔다.
그는 말이 사실에 들어맞는 게 ‘참’이고, 그렇지 않은 것을 ‘거짓’으로 규정했다.

그 뒤에 서양 철학자들은 참거짓을 판단이나 인식의 영역으로 확정짓고 말았다.
이는 널리 알려진 ‘진리 대응론’을 말하는데,
모든 진리론은 이것에 기초한다.

‘트루스(truth)’의 근본 의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통해
‘말과 사실의 맞아떨어짐’, 한 마디로 말해, ‘맞음’으로 굳어졌고,
‘참’의 영역 또한 ‘말의 맞음’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런 까닭에 ‘참’과 그것의 맞짝 낱말인 ‘거짓’까지 말의
‘맞지 않음’, 달리 말해, 말의 그릇됨에 갇히고 말았다.
거짓이 ‘말과 사실’의 맞지 않음으로 좁혀진 까닭에 ‘거짓말’ 또한
‘사실에 맞지 않는 말’로 축소된다.

이때 ‘트루(true)’나 ‘투르스’에 대한 올바른 우리말 옮김말은
‘참’이 아니라 ‘맞음’이 된다.

‘맞음’이 어떤 것과 다른 것, 말하자면, ‘말’과 ‘그 말로써 말해진 것’의 같음
또는 서로 어울림을 나타낸다면, ‘참’은 비어 있던 그릇에 물이 차오르거나
어린 나무가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는 것과 같이 동사적으로 이해되어
‘옹긂’으로 뜻매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 ‘트루스’를 우리말 ‘참’으로 옮긴다면, 그것은 마치
택배 기사가 배달 상품을 엉뚱한 마을에 배송한 것과 비슷하다.

나는 트루스가 ‘말의 차원’에서 다뤄질 때는 그 말을 ‘맞다’라는
우리말로 옮길 것이고, 우리가 흔히 ‘참말’이라고 부르는 것을
‘맞음말’로 고쳐 말하고자 한다.

만일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안대로 거짓말을 ‘안 맞는 말’ 또는
‘틀린 말’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에 대한 우리의 경험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누군가 “해는 지구를 돈다.”라는 말을 참말로 말했다면,
우리는 그가 거짓말을 한다고 여기기보다 그의 과학적 지식이
틀렸다고 생각할 것이고, 따라서 그의 앎을 고쳐 주려 할 것이다.
우리가 그를 ‘거짓말쟁이’로 보려 하지 않는 까닭은 우리가 그의 거짓말이
의도적인 게 아니라 잘못된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뭔가를 잘못 알고 ‘틀린 말’을 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그때 우리는 누군가의 ‘잘못-앎’을 바로잡아 주려 하지 그를 대놓고 깔보거나
핀잔을 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그가 스스로의 잘못을 재빨리 알아챈 뒤 그것을 고친다면,
그는 그 몰랐음에 대해 용서를 받게 될 테지만,
만일 그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틀린 말’을 끝까지
‘바른 말’이라고 우긴다면, 우리와 그 사이에는 말다툼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때도 우리는 그를 거짓말쟁이로 간주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 그는 자신의 ‘틀린 말’을 ‘참말’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는 지구를 돈다.”라는 말은 무엇이 또는 어디가 틀렸는가?

틀림은 본디의 틀이 어그러지는 것을 말한다.
베틀은 ‘베를 짜기 위해 설치해 놓은 기계’로서 사람이 베를 짤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만일 이 틀이 무너지거나 깨지거나 어긋나거나 부품이 빠진다면,
사람은 그것으로 베를 짤 수 없게 된다.

‘틀’은 뼈대나 얼개 또는 구조(構造)를 뜻하고,
‘틀다’는 사람이 그 ‘틀’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한데 모아
맞물려 엮어 나가는 일을 말한다.

틀이 이렇게 맞물려 짜인 것이라면, 틀림은 그 ‘틀’이 어그러져 있는 것을 말한다.
베틀이 어그러지면 씨줄과 날줄이 서로 얽힐 수도 있고,
아예 옷감을 짤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해는 지구를 돈다.”라는 말과 “지구는 해를 돈다.”라는 말은
그 ‘말틀’이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말은 그 형식에서는 틀린 데가 없다.
만일 어떤 말하미가 그 말을 ‘말하려는 까닭’과 그 말로써 ‘꾀하는 바’가 같다면,
우리가 이 두 말에서 ‘틀린 데’를 가려낼 수 있는 곳은 두 말의 ‘말해진 바’일 뿐이다.
“해는 지구를 돈다.”는 말에서 말해진 ‘바’는 해가 지구를 돈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게 사실이 아니거나 거꾸로 지구가 해를 도는 게 사실이라면,
“해는 지구를 돈다.”라는 글월은 ‘사실이 아닌 사실’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하나의 글월이 그 자체로 옳을지라도 그 글월이 말하는 바, 달리 말해,
그것의 뜻하는 바가 사실이 아닐 때, 그 글월은 사실과 안 맞는 틀린 것이 된다.

하나의 글월은 그것이 그 자체로 옳을 때 비로소 그것이 말하는 바의
사실과 맞거나 틀릴 수 있다.
비문(非文)이나 헛소리는 그것 자체가 옳지 않기에 그것이 말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고,
그렇기에 그것이 사실과 맞는지 안 맞는지를 결정하기가 어렵다.

틀린 말은, 말이나 글이 그 자체로는 옳지만 그것의 ‘말하는 바’가
실제 사실과 그릇된 말을 말한다.

말의 틀림은 ‘내뱉어진 말 자체’에서 벌어지는 게 아니라 ‘말’과
‘말해진 바’의 사이에서 일어난다.
하나의 말은 그것이 말하는 바가 ‘사실이 아닐’ 때, 바꿔 말해,
그것이 ‘거짓’을 말할 때, 틀린 말이 된다.

“해는 지구를 돈다.”라는 글월은 그 말틀에서는 옳지만,
그것이 나타내는 사실에서는 틀렸다. 만일 누군가 이러한 ‘틀린 말’을
내뱉는다면, 그 말이 ‘참말’이 아닌 한, 그
는 거짓말을 한 셈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일 그가 이러한 거짓말을 한 까닭이 그가 올바른 과학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면, 그가 ‘틀린 거짓말’을 하게 된 책임은 그 자신에게 있기보다는
그릇된 교육에게로 돌려질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종류의 ‘틀린 말’을, 비록 그 말 안에 거짓이 담겨 있을지라도,
‘거짓말’로 부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틀린 거짓말’을 ‘틀림말’로 부를 것이다.

틀림말은 누군가 그 말을 참말로 믿고 있지만 그 말의 뜻하는 바가 실제로는
틀린 것을 말한다.
이러한 틀림말은 우리가 그것의 참거짓을 되새겨 볼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상식(常識)’과 관련해 많이 발생한다.

보기컨대 “혀는 단맛, 쓴맛, 신맛, 짠맛을 느끼는 부위가 다르다.”라는
말은
2006년 ‘사실 아님’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아직도 이 말을
‘맞음말’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람들은 이러한 ‘틀림말’을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옳다고 믿기 때문에
덩달아 덮어놓고 받아들이곤 한다.

이와 달리, “고래는 포유류가 아니다.”라는 틀림말은 누군가 미루어
생각하기를 거쳐 스스로 지어낸 것일 수 있다.
그는 아마도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수 있다.
‘그래 맞아, 고래는 바다에 사는 물고기이고, 물고기는 새끼에게 젖을 먹여
키울 수가 없을 테고, 그렇다면 고래는 포유류가 될 수 없는 거야.’
그는 자신의 추론이 틀림이 없다고 믿기에 저 말을 ‘참말’로 생각한다.

틀림말을 믿고 거기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은 ‘거짓말 좀비’가 된다.

‘좀비(zombie)’는 ‘살아있는 시체(屍體)’, 한 마디로 말해, ‘산주검’을 말한다.
좀비는 무덤에 묻혀 썩어가야 할 주검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움직일 때의
그 몸덩이를 말한다.

그들이 퍼트리는 ‘좀비 거짓말’은 뇌에서 뇌가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기계적으로 옮겨진다.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에 일본 도쿄와 관동 일대에서 진도 7.9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때 일본인들은 일본 경찰이 퍼트린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라는
유언비어(流言蜚語)에 홀려 일본도, 죽창, 도끼 등으로 조선인 6천 명을 넘게
학살했다.
이 ‘틀린 [거짓]말’은 그때 값싼 노동력으로 일본에 끌려왔던 조선인에게
일자리를 빼았겼던 일본인들에게는 학살로 이어질 만큼의 혐오(嫌惡)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틀린 거짓말은 그것이 좀비 거짓말이 되는 순간 그 거짓말의 뒤에서 속삭이는
혐오의 목소리를 부추기게 된다.

오늘날에는 틀림말이 인터넷을 통해 동시다발로 전파된다.
이는 마치 꽃가루가 들판에 흩날려 떨어지는 것과 같다.
정보나 지식의 탈을 쓰고 유포(流布)되는 ‘틀린 거짓말들’은
사람들의 삶에 곰팡이처럼 스며든다.

사람들은 그것이 거짓말인 줄 꿈에도 모른 채 그 말을 믿고 행동한다.
그들은 ‘거짓말 공생체(共生體)’처럼 서로의 거짓말에 기생한다.
그들은 그것이 ‘틀린 거짓말’임을 모를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은 결코
거짓말을 하려는 뜻이 전혀 없었기에 자신들의 말이 틀림말임을 결코
인정할 수조차 없다.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에는 더욱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어제의 지식이 오늘에 틀릴 수가 있을 뿐 아니라 틀림말이 집단적으로
공유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정보도 다음날 틀린 것으로 판명될 수가 있고,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도 틀린 정보를 제공할 수가 있다.
우리는 고도로 전문화되고 복잡해진 정보들 가운데 어떤 것이 참이고
거짓인지를 명확히 구분할 수가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받아들이는 정보를 참인 것으로 여기려 하고,
다른 집단이나 적대 집단에게 유리한 정보는 처음부터 거짓으로 규정지으려 한다.

이제 틀린 거짓말은 저마다의 집단에 맞춰 적당히 손질된 정보로 바뀌고 있다.
오늘날에는 있는 그대로의 날것 정보는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다.
가공된 정보는 ‘틀린 거짓말’이 아니라 시장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그 틀을 바꾸거나 그 틀에 맞춘 말이 된다.

‘틀이 바뀐 말’ 또는 ‘틀에 박은 말’은 그 틀에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기가 무척 쉽다.

‘틀박이-말’은 비록 그것이 틀린 데가 있을지라도 그 자체로 아무 문제가
될 게 없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틀’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틀린 거짓말은 거짓말로 인식될 수 없다는 것을 넘어 진영 논리에 따라
‘맞는 말’로 격상될 수도 있다.

슬기 맑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