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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7(03:35) from Anonymous Host
작성자 : 김정락 > 누리	조회수 : 9 , 줄수 : 9

판ㅌ헤의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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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락
2022년 7월 14일 ·
<판테온의 구멍>
혹시 로마에 가셔서, 고대의 유적들을 관람하실 생각이시면, 무엇보다 로마건축의 기초적인 원리에 대해서 먼저 숙고할 필요가 있다. 라틴어로 건축은 architectura(=architecture)이다. 접두어인 arch-는 최초 혹은 원조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아치(=홍예)라는 명사로서도 기능한다. 아치는 고대 로마건축에 있어서 핵심이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과거 그리스건축과 구별된다. 아치공법은 기둥과 들보라는 초보적인 구축구조를 벗어난다. 더 넓어진 기둥간격으로 말미암아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석재 들보의 자체적인 한계를 넘어서 다리를 짓고 궁륭을 얹을 수 있었다. 사실상 아치구조는 - 현대건축의 트러스트구조와 유사하게 - 건축은 물론 토목사업에도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대표적인 건축물인 콜로세움은 수많은 아치의 벌집구조로 이루어졌으며, 하나의 아치만으로도 독립된 건축물을 만들었다. 개선문(triumphal arch)! 아치의 기술은 드디어 궁륭(dome)에서 정점을 이룬다. 그리고 그 정점의 사례가 판테온(Pantheon)이다. 외관상 원통과 육면체의 단순한 몸체에 고전적 포르티코(=포치)를 출입문으로 삼았고, 상부에는 돔의 볼록한 돌출을 볼 수 있다. 더 인상적인 것은 내부의 구조다. 단순한 반구의 상부와 2층 구조의 하부로 이루어진 실내는 하나의 공간이다. 천장을 받칠 어떠한 지지구조도 - 이를테면 기둥 - 부재한다. 반구의 궁륭은 벽 내부의 촘촘한 아치구조로 하중을 분산시켰다. 현대의 건축술로도 결코 쉽지 않은 구조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점은 아치와 궁륭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인 이맛돌(keystone)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여기에 로마인들은 창을 만들었고, 오쿨루스(Oculus)라고 불렀다. 원래 인간의 눈을 의미하지만, 건축에서는 창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눈이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이란 개념으로 확장된 것 같다. 하여튼 로마인들의 건축기술은 가장 힘이 받는 곳을 비워둘 수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또한 이 창은 이 건물의 유일한 광원으로 기능함으로써 건축의 목적에 합당한 상징적 의미도 마련해 놓았다.
판테온은 기원 후 124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건립하였다. 궁륭건축의 모범으로서 이후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 성당은 물론, 인도의 타지마할까지 판테온은 선구적 위치를 차지하였다. 로마, 아니 유럽에서 이와 같은 규모와 건축술을 다시 복구하는 데에는 무려 1,200년이 걸렸다.